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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눈 맞으러 간 날의 사연

mama77 2017. 2. 2. 18:51

설날 연휴 끝 2017년 1월 29일 남양주에 사는 친구가 굳이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 한다. 나는 서울에서 보자, 친구는 자신의 집에서 보자로 서로 전화 통화를 하였다.  그래, 늘 너가 날 보러 왔으니, 한번 쯤 내려 가줌이 예의겠지라 생각하고, "그래 내가 너의 집으로 갈께"라고 하니 친구 왈 "기왕 오는 것 일찍 내려 오라"고 까지 한다.    

어쩌거나 친구의 집으로 향했더니 친구가 오늘 일정을 다 짜 놓았으니 너는 따라만 오라는 것이다. 아야 소리도 못하고 친구가 가자는 봉선사를 찾았다. 사실 나는 친구가 봉선사!, 봉선사! 할때 친구가 말하는 절집의 가늠을 몰랐다. 막상 봉선사 입구에 와서야 그곳이 대 사찰이고, 광릉 수목원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쳐 지났던 곳임을 알아 차렸다.

나의 경우 절집에 들어서면 반드시 절집 입구에 있는 그곳에서 학문을 하고 경을 읽던 승려들의 묘비를 본다. 그 절집의 꽃을 만나는 것이다.

 

봉선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 031-527-1951)

고려 광종 20년인 969년에 승려 탄문 운악산 자락에 운악사라는 절을 창건한 것이 전신이고, 봉선사로 불리운 것은 조선 예종 때인 1469년이다. 왕의 어머니인 정희대비가 죽은 남편 세조의 능을 운악산으로 이장하여 광릉이라하였다.  이 절을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종은 친필 현판을 하사하여 1551년에는 교종의 으뜸 사찰로 지정되어 사세가 번창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복구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또 다시 전소되어 현대에 복원한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태허(운암 김성숙)스님, 운허스님이 머물렀고, 운허의 친척 형이 되는 이광수도 은거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이광수 기념비가 절 입구에 세워져 있다.

나의 경우 사전 정보가 없어 찾아 보지 못하였으나, 새봄이 되면 다시 봉선사를 찾아 꼼꼼히 여유를 가지고 볼 요량으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참고로 사진만 찾아 올려 보았다.  

 

이광수 기념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절 초입에  큰 연못이 있는 곳에 가기 전에 승과시험을 치르던 터가 비석이 있는 이곳이 승려들의 자격시험을 치를 만큼 학승의 배출이 있던 곳이고, 세조를 모시는 전집이라서 그 위세가 높은 절집 다운 풍모를 보여 주고 광활하기 조차한 절집의 멋스러움이 눈 내리는 날에 정말 멋진 감상을 할 수 있어 좋다. 

너른 연못은 여름 한 철 연꽃 축제가 멋스러워 소담스런 연꽃구경이 또한 장관이라니 사계절 이 절집을 방문한다면 매번 다른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봉선사 연꽃축제 2016 사진3

 


 > 봉선사소개 > 전각위치별소개
 1. 큰법당 : 초창(初創)은 조선 예종 1년(1469)으로, 89칸의 절 규모와 함께 서울 이북에서 가장 크다고 전해졌으며, 재창(再創)은 1637년 계민(戒敏)선사에 의한 일괄 중수(重修)때이다. 삼창(三創)은 1970년 운허스님에 의해 건립된 현 전각으로, 스님의 뜻에 따라 '큰법당'이라 이름하였다.
 2. 관음전  : 원래는 노전 스님이 머무는 노전채였던 것이, 6.25때 전소되었다가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 복원되어 지금은 관음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지장전 : 원래는 어실각(御室閣)으로서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다. 이 또한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에 복원하여 지금은 지장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4. 삼성각 : 월초(月初)화상에 의해 1926년에 건립되어 6.25때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전각이다. 산신, 칠성, 독성 세 분의 성인을 모셨다 하여 삼성각이라 한다.
 5. 조사전 : 1977년 7월, 대시주 정보현행의 도움으로 삼성각과 동일한 규모로 지어서 원래는 '개건당'으로 사용하던 당우이다. 근래에 들어 그 아래쪽에 새로이 전각을 지어 개건당에 모셔졌던 봉선사의 개산(開山)과 중건(重建)의 공덕주들을 모시고는, 이곳은 조사전으로 장엄하여 계민선사와 월초(月初)스님을 비롯한 근대의 봉선사 조사스님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6. 청풍루 : 6.25로 전소되기 전에는 천왕문과 해탈문 및 소설루(小雪樓)가 있던 자리에 모든 신도들이 '조약돌 모으기 운동'이라는 불사를 전개하여 1985년에 낙성을 보았다.
 7. 방적당 : 스님들이 어느 단계의 수행을 마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 낳은 수행을 준비하는 곳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당우이다. (현재는 능엄학림 스님들의 교육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8. 운하당 : 대중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봉선사 신도들의 교육장소이기도 하다.
 9. 개건당 : 개건당(開建堂)이란, 봉선사를 창건하여 개산(開山)한 개산대공덕주 정희왕후 윤씨와, 중건공덕주인 계민선사와 정문수행을 모시기 위한 당우로서, 개산과 중건의 머릿글을 따서 이름한 것이다. 현재의 조사전 전각이 원래는 개건당이었는데, 이 당우를 신축하여 개건당으로 사용하고 원래의 개건당은 조사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봉안당으로 명하여 납골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10. 다경실 : 차를 마시며 경을 읽는다는 뜻의 '다로경권(茶爐經卷)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다경실은, 1978년 원래 애월재(愛月齋)가 있던 자리에 운허스님의 퇴로지처(退老之處)로 지은 것으로서, 당사의 역대 조실스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이다.
 11. 판사 관무현 : 어실각(御室閣)으로 인해 봉선사 주지는 조선왕실로부터 봉향판사(奉香判事)의 작위를 수여받았는데, 따라서 봉향판사가 머물던 이곳은 곧 당사의 주지실이기도 하였다. 이 또한 6.25로 소실되었던 것을 1998년 옛 모습대로 복원 하였다.
 12. 동별당 : 서기 1966년 목조 스레트용 2동을 각 10평으로 지어 간이건물로 쓰던 것인데, 1990년 1월에 일부가 화재에 타고 남은 것 역시 퇴락하여 그 해 9월에 지하 20평지상 20평의 단일 건물로 개축한 것이다. 원로스님들의 퇴로지실과 지하층은 통신강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13. 서별실 : 판사관무헌을 복원하며 같이 복원한 당우이다. 현재는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여지고 있다.
 14. 선열당 : 반지하의 후원(식당)을 신축하며, 그 위에 지은 당우이다. 애초에는 객실의 용도로 신축하였으나 객실로는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워 수좌스님들의 해제철 해랑방사(解囊房舍) 등 다각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15. 회랑
봉선사 연꽃축제 2016 사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