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일기

모든 것의 죽음은 낙엽과 같다.

mama77 2016. 11. 16. 09:33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는 하루의 일기를 자세히 보는 편이다. 특히 내가 느끼는 체감온도로 세상을 맞이 한다. 특히나 이른 아침 늘 잠의 유혹에서 떨쳐버리고 일어나기 위해 박자를 넣어서 불떡일어나기도 하고, 때론 핑계를 대면서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잠은 잠시의 휴식이고, 영원한 잠일 수도 있다.

가끔은 산다는 것이 참 기쁘다라는 생각도 든다. 11월은 가톨릭에서는 위령의 달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기간이지요. 살아 있기에 그들이 다하지 못한 일들과 그들이 하다가 간 일과 또 그들이 소망했던 일들을 대신 살아 주어야 하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고덕동은 낙엽 밟기 좋은 곳이죠. 낙엽이 뚝 뚝 떨어져 있는 만추의 거리를 걷다보면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새의 수북한 길을 걷고 있으면 몹시도 나무의 입장이 어쩌면 내 모습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침 햇살에 붉게 얼굴을 붉힌 단풍 잎새도 금방 내 얼굴을 가릴 것 같은 플라타너스 잎새도 자신의 한해를 정리하고 새 희망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래로 아래로 떨구고 있는 것이지요.  스스로 원해서 하는 내려놓음을 나무도 하는데 나는 왜, 오늘도 작은 이기심과 욕심으로 때때로 머리의 통증을 느끼곤 합니다.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하는데.............

살아 생전 우리 엄마의 늘 입에 달은 말은 "썩어 주으면 없어질 육신인데 왜 이리도 게으르니?"라고 말을 했다. 그땐 엄마가 하는 말이 참 듣기 싫었다. 더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엄마마음에 맞을까? 하는 생각으로 반발 심리도 있었지만 어쩌면 중년의 엄마는 사춘기의 내 모습을 좀 더 열정적으로 살기를 원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엄마처럼 잔 소리해 주는 사람도 없고, 나 자신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할 대상도 없다. 오히려 내 스스로에게 가끔 채근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나이를 먹으면 참 잔소리가 그립다. 친구도 남편도 이웃도 나를 보고 잔소리를 해 주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조금 잔소리를 들으면 다시 너무 간섭한다고 손사레를 치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가까이 있는 사람의 객관적인 말은 인생에 있어서 보약이 된다. 오랜 친구에게 가끔 전화를 하면 어릴 적 내가 잊어 버리고 있던 작은 소망과 꿈을 발견하게 된다. 참 고맙다 그가 살아 있어서 그리고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음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평생에 앞으로 몇번이나 만날 있을까?  아마도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만날 사람이라면 그다지 걱정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생애 딱 한번의 만남이 평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내 생애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리스트를 작성하여 저무는 11월에 그동안 보고 싶지만 미루어 왔던 사람들을 그리고 그동안 사는 것이 바뻐서 미루고 미루어 왔던 꿈들을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 또한 11월을 보내면서 그렇게 실천을 하려 한다. 젊은 날에 걸었던 거리면, 젊은 날에 같이 한 벗들과 잠심 만났지만 수십년째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화도 카톡도 날려 볼 생각이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내가 나를 내려놓는 방법으로 늦가을 서정을 도란도란 나누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