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나는 누구와 만날까?
이른 아침 출근을 하여 아는 분과 한담을 나누고 헤어지는 순간 내 귀가를 스치며 지나간 것이 있었다. 정말 쩜쩜 몇초만 더 했다면 나는 그 새와 부딪쳤을 것이다.
나는 방금 내 귀가를 스쳐 지나간 것이 나무를 향해 나르는 새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새가 앞만 보고 날 수 있을까?", "새가 나를 보지 못한 걸까?", "아니면 나와 그가 동시에 움직임을 한 것일까?" 등등 묘한 귓가의 스치던 새의 무게감을 느끼면서 사무실로 향했다.
이른 아침 내일 행사시 비가 온다니 좀 걱정이 되어 좀 이른 출근을 했다.
새 한마리의 조우가 오늘 하루를 즐겁게 한다.
찰나의 시간을 아끼라는 충고 같기도 하고, 지난밤 내내 아들의 전화를 기다렸는데 무슨 일인지 묵묵무답 군생활이라는 것이 비밀도 없고 사 생활도 없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전화를 주게 하겠다는 말을 믿었는데 아들이 전화를 하지 못할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마음을 접는다.
이제 살아가는 날 중에 아마도 수시로 나는 아들을 기다리고, 아들은 수시로 자신의 삶으로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내 부모에게 한 것처럼 말이다.
여염 짐승도 새끼를 때가 되면 날려 보내는 것을 인간인 나는 아직도 둥지에 새끼를 가두려한다는 반성이 된다.
분주한 7월을 보내면서 내 자신과의 대화가 참 부족하여 잠시 마음이 산란하고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바쁜 삶의 잠시라는 것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서 하루를 살아내고자 한다.
상황이 바뀌어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상태에 따라서 상황도 달라질 것이다.
조금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누군가와 친해지고 하는 일상이 사람의 길인지도 모른다.
때때로 만남 속에는 고맙고 반가운 만남도 있지만 혐오스럽고 상대를 무시하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만남도 있다.
내 자신이 그런 혐오스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자숙하고 겸손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최근 나 자신이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간혹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리 팀원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답답할 때는 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때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 상대에게도 좋은 덕담을 건낼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 아파트 층계를 오가면서 조합인가, 이주계획이라는 단어를 만날 때 마다 좀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이제 곧 이주를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12년을 이 집에서 한결같이 살아 왔으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번 8월은 정신을 차리고 내가 다시 기거할 곳을 찾는데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보금자리도 내가 이곳에서 살았듯이 무탈하였으면하고 늘 기쁨이 샘솟는 집이기를 기도한다. 아마도 새 집에서는 새 식구도 맞이할 것이고, 나의 정년을 보내는 쉼과 꿈을 실천하는 집이 될 것이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새집을 알아 볼 계획이다. 건 장마로 비가 오락가락하고 후덕지근한 요즘 나는 새집으로 이사를 가는 상상을 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찰나의 순간, 나와 조우한 새의 놀라운 생명력과 에너지를 받아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