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는 것을 왜, 빠르게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가?
시대가 바뀌는 것을 왜, 빠르게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가? 처음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무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최근 나는 "왜, 내가 원하지도 않는 시대의 상술과 시대의 강요에 굴욕적으로 승복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생기고 있다. 유명인이 트위터를 한다고 야단을 2~3년전부터 하더니 요사인 이제는 트윗을 중지 한다고 선언을 하고 있다.
과연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깊은 속내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이 다 같은 것인가? 그러면 왜, 세상이 모두 다 친구가 되지 못하는 걸까? 배움이 달라서, 이해가가 달라서, 살아 온 환경이 달라서, 난 그렇게 살지 안아서 등등 같지 않음에 대한 이유는 너무나 무궁무진하다. 오늘도 외부에 나갔다 돌아 와 보니 인터넷 전화기로 교체가 되어 있다.
단지 전화기의 변화지만 그동안 쓰던 전화번호도 달라진다고 한다. 마침 변화되는 전화번화가 입에 외우기 쉬워서 나는 개인적으로 좋지만 아마도 자신의 번호에 애착이 있는 사람은 당분간 많이 불편할 것이다. 나는 한달에 한번 서점을 찾는데 20년전 서점과 현재의 서점은 너무나 달라져 있다. 특히 K광화문점은 주변의 건물이 고층화되어 있어 그 건물 앞에 서 있는 비각이 마치 우리 문화의 현재를 보는 듯하다.
오래 전 작은 아이들 책방을 하는 여자와 대형서점을 만들어 팔아치우는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속 여주인공의 엄마가 물려준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그 서점에 내려오는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가끔 고서점과 헌책방을 드나들 때가 있다. 너무나 대량 생산되는 까닭에 한 권의 책이 한장의 앨범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세상을 보면서 창작일을 하는 문화인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생긴다. 음악이 넘쳐나서 음악이 찻집의 백 뮤직으로 전락하고, 가수가 한명으로 안되서 10이상 나와서 무대를 흔드는 세상. 왠지 정말 못 마땅하다.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어야 할 음악이 소음으로 느껴진지 오래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있으면 새소리가 나는 산을 오른다. 솔향도 좋다. 화학 향기에 가공한 인조 향으로 우리 생활공간은 인공물로 오염되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두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느리게 걷고 조금 느리게 생각하고 조금 느끗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하나의 단편을 보고 모든 사람을 평가하려 들지 말고,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 한번 더 생각하고 말과 행동을 한다면 아마도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은 줄어 들 것이다.새로운 전화를 맞이하면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새롭다는 것과 작은 변화에 대한 것에 대한 단상이 나를 울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