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일기

사흘을 아프고 나니

mama77 2013. 3. 12. 08:13

 

이른 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이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동안 무언가를 해야 하는 강박과 압박 감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지난 금요일 이른 아침 출근을 하려 일어났는데 구토와 설사로 방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다급한 아들의 목소리와 심한 통증으로 엎드려 있었다.

한 참 후에 시어른이 와서 내 등을 쓸어 주고 배를 어루만져 주고 약을 먹고 매실 엑기스를 먹고 나서야 통증이 가라 앉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눈을 뜨니 새벽 2시경이다. 이미 아이는 잠을 자고 있고, 나 홀로 잠에서 깨어났다. 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힘든게 아플 때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극심한 통증속에 어렵게 출근을 하지 못한다는 문자를 넣고 방 바닥에 고꾸라졌는데 아마도 7시 40분경쯤이었을 것이다. 항상 나는 그 시간에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전화벨이 울겼던 것 같다. 직장 동료가 왜 출근을 안 하냐는 전화다. 분명히 문자를 어렵게 2번 보냈는데 공괴롭게 동료들에게 보낸 문자는 강한 통증중에 보내어서 미쳐 전송을 누리지 않았던 것 같다.

 

토요일, 3월 진찰을 이해 채혈을 하려 아산병원을 갔다. 통증도 사라졌지만 이제 음식물을 먹는 것이 공포스럽다. 빈 속에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토요일 병원 풍경이 달라져 있다. 서관 채혈실도 수납창고도 문이 닫혀 있다. 왠지 잘못 왔구나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기왕에 왔으니 접수나 하고 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신관 접수대에 가 보니 다행히 접수를 받았다. 그리고 열려 있는 동관 채혈실과 유방촬영실을 거쳐서 검사를 마치고 나니 10시였다.

 

무언가를 먹는 것 그리고 몸이 아프다는 것도 모두 내가 살아 있기에 느끼는 것들일 것이다. 속이 아직도 더부룩하고 기운이 없었다. 마침 언젠가 누군가 말을 했던 한의원이 생각이 나서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하여 소생 그 한의원 이름인데 아마도 내 마음 깊은 무의식이 그 곳을 향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작은 한의원인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사람들이 보통 2~3시간 기다려야 한다더니 나도 그들처럼 조용히 기다렸다.

 

원장 선생님의 치료법은 사혈침이었다. 나도 오래 전에 사혈침의 효과를 말하던 지인이 있었기에 치료를 받아 본 환자에게 물었다. “아프지는 않느냐?”, “치료 해 보니 효과는 있느냐?” 등등 흔한 환자 다운 질문을 하였다. 오랜 기다림 후에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간과 폐에 열이 많아서 그런다고 한다. 사실 나는 식구들을 위해 한의원에 보약을 짓기 위해 방문한 경험은 있지만 나 자신을 위해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사혈침을 맞고 나니 가슴이 답답했던 것이 사라지고 숨쉬기가 한결 부드러웠다. 정말 환자는 작은 것에 감사를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해 좀도 좋을 듯하다.

 

내내 기력이 없어 누워서 3일을 보냈다. 미사 중에도 비몽사몽 어머니는 내가 걱정된다면 닭을 삶아 음식을 보내 주었지만 사실 내 병은 내가 알기에 못 먹어서 생긴 병이 아닌 너무 돼지 같이 무 분별하게 먹은 까닭에 오늘에 이른 것이라는 반성이 앞선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돼지 한 마리를 잡는 것이 1년에 두어번인데 나는 일상에 거의 매일 음식을 토할 때 까지 먹고 있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동안 2년새 살이 무척 올라 정말 옷들이 끼어서 불편했는데 이번 기회에 적게 먹고 많이 운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남에게 또 내 자신에게 폐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