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글모음

2012년초 진제스님 인터뷰

mama77 2012. 1. 2. 08:38
부산 해운대 해운정사(海雲精舍) 조계종 제13대 종정으로 만장일치 추대된 진제(眞際ㆍ77) -만장일치로 종정에 추대된 스님께 불교계 안팎에서 기대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성철스님은 생전 3000배를 해야 만나 주셨는데, 스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성철스님이 그런 건 확고한 도를 알아야겠다는 신념을 가늠하기 위해서죠. 너무나 고귀한 진리를 쉽게 알려주면 듣고 흘려버리거든. 법문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힘들게 수도를 해서 깨달은 경지를 말해주는데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서 생활화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흘려버려요. 저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만 사람을 보려 합니다. 토요일은 일반인을 위해서, 일요일은 스님들을 위해서 열어놓으려 합니다.

-스님이 출가하고, 깨달음 얻은 과정을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스무살에 음력 설이 오니까 오촌당숙이 근처에 있는 절에 한번 가보자고 하셨지요. 석우
스님께 인사를 드리니 대뜸 내 모습을 보고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도를 닦아 보
지 않겠는가"라고 물으시더군요. "범부 중생이 위대한 부처가 되는 법이 있네"라고 합디다.
그 한마디 말에 감화돼 부모님과 상의한 뒤 석우스님을 따라 해인사에서 출가를 했지요. 스
물넷까지 석우스님 시봉을 들었는데 스님이 그 즈음 열반에 드셨어요. 장례를 마치고 파계
사에 계신 성철스님을 찾아 공부 점검을 부탁했는데 스님이 "나는 몰라 나는 몰라" 하며 응
대를 안하셨어요. 그래서 그 걸음으로 경남 묘관음사에 계신 향곡스님을 찾았죠. 스님께서
대뜸 "일러도(진리의 바른 답을 해도) 30방이요, 이르지 못해도 30방이다"며 벼락같이 물었
는데 우물쭈물 답이 안 나오는 거야. 쫓겨난 뒤에 다시 스님을 찾아갔을 때 받은 화두가
`향엄상수화`입니다.
어떤 사람이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잡지도 밟지도 않고 입으로만 물고 매달려 있
을 때, 밑에 지나가는 어느 스님이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어떻게 답을 하려는가라는 물음이었지요. 답을 하려니 낭떠러지에 떨어져 몸
이 박살이 날 것 같고 답을 안 하려니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이 화두를 들고 2년5개월간
씨름 했어요.

`향엄상수화`의 낙처(落處ㆍ의도하는 지점)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 법은 아는 자만이 통하지. 팔만대장경을 지고 올라가도 모릅니다. 이는 하도 깊고 심오해서 세상의 견문 가지고는 안됩니다. 해설을 하면 만 사람의 공부하는 길을 막아버립니다.

-세상에 좋고 재미난 일이 많은데 뭐 하러 수행의 삶을 사느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세상의 것)은 찰나의 꿈이지요.
도를 깨닫게 되면 죽음에 다다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사가는 것처럼 자유의 분(分)을 갖춥니다.
중국에 방거사라는 도인이 살았는데 참선이 얼마나 좋은지 마누라도 딸도 수행을 많이 하게 했어요. 어느날 좌선하고 있는데 딸이 방에 들어오니까 "내가 오늘 정오가 되면 열반에 들고 고요한 진리의 낙을 누릴 것이다. 그러니 정오가 되었나 보고 오너라"고 말했죠.
법력이 깊어진 딸 영조가 바깥에 갔다 오더니 "아버지 오늘 일식이 돼서 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라고 일러요. "그럼 내가 한번 볼까" 하고 밖에 갔다가 들어와 보니 딸이 앉은 채로 열반에 든 거야. 방거사가 하는 말이 이래요. "내 딸이 애착의 주머니를 고통 없이 벗었구나. 세상에 없는 일이구나. 천상 이 시신을 화장하려면 나는 일주일 후에 몸을 벗어야겠다." 도란 이런 거예요. 애착 없이 몸뚱이를 벗고, 죽고 사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허허.

-진리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허허, 참 설명하기 어렵지요. 말을 하자면 중생의 고뇌도 없고, 항시 편안한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 춘삼월 호시절에 일백 가지 꽃이 누구를 위해서 피는고. 자연의 백 가지 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 이 순수한 즐거움. 그것을 감상하는 아름다운 마음 그것이 진리요, 이는 만 사람이 똑같아요. 천 사람 만 사람이 그 꽃에 매료되거든요.

-일반 사람들은 생계도 있어 과연 자신이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의심합니다.

▶참선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24시간 화두를 붙잡고 씨름을 해야 해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일상생활을 하는 겁니다. 세상사를 전폐하고 하라는 게 아니거든. 농사짓고 빨래하고 장사하고 잠자는 가운데서 오매불망 간절히 의심을 천번 만번 미는 거야. `어떤 것이 참나던고` 참의심이 시동 걸리면 이러한 상태가 시간이 흘러서 일념이 지속되고. 사물을 보는 찰나,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납니다. 그러면 억만년 전, 우주가 생기기 전 나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지. 참나는 석가모니나 예수, 공자에 있는 게 아니지요. 각자 마음의 근본 바탕에 있거늘, 사람들이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종교가 정작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깥 일에 치달아서 그럽니다. "내 신도를 만들겠다" "돈을 잔뜩 모으겠다"고 하는데,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모든 종교는 화합과 수행을 위주로 해야 합니다. 수행과 화합이 근본인데 이것에서 벗어나면 내실을 쌓을 수가 없지요. 종교는 모든 불우한 이웃과 호흡을 같이 하는 데 근본 뜻이 있어요. 복이란 만인을 위해 착한 일을 베풀 때 생기는 것이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럼 지혜는 어떻게 생기느냐. 생활 속에 참선을 해서 마음 속의 갈등을 없애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욱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중생은 좋은 것과 높은 것만 취해요.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대번에 좋은 자리와 부, 출세가 오는 게 아니거든. 근실하게 노력하고 성실하면 결국 만 사람이 다 우리 회사에 오라고 합니다. 출세의 근본은 바른 행동과 바른 용심(用心ㆍ마음 씀)에 있어요. 직업에 어디 귀천이 있나. 성실하게 하다보면 어디선가 다 이끌어줍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에서 나옵니다. 탐진치(貪嗔痴)는 팔만사천 번뇌의 뿌리죠. 이를 뿌리째 없애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 참 나를 바로 보는 수행에 몰두해야 합니다. 수행을 통해 `나`라는 허세가 없어지면 늘 자비심이 발동하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향휘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