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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식

복지논쟁 방향을 바꿔라 하

◆ 복지논쟁 방향을 바꿔라 (下) ◆

#장면 1. 보편적 복지 원조국가 스웨덴은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2001년에 65세 이상에게 무조건 지급하던 기초노령연금 대신에 소득 수준에 따라 연금액을 결정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 중 17%로 양호한 편이지만 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복지 지출을 줄이는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예산을 겨우 3% 줄이는 동안 스웨덴은 71%에서 59%로 12%포인트를 줄였다. 허리띠를 훨씬 세게 졸라맸다.

#장면 2.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2001년 두 번째 집권한 뒤 연금지원을 늘렸다. 이탈리아는 노인 비중이 20%를 넘어 이미 스웨덴보다 높고 복지 혜택은 북유럽 부럽지 않은 나라다. 이탈리아는 `복지 트릴레마`를 구성하는 복지 지출, 재정건전성, 국민 부담 가운데 복지 확대만 고집하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이미 국민부담률이 40%를 훌쩍 넘는 데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증세를 주창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재정건전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북유럽과 남유럽의 상반된 선택이 불러온 결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스웨덴 국가채무는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불과 20억달러(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는 1조2076억달러에서 2조3345억달러로 93.3% 급증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앞서 복지국가를 지향한 북유럽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복지시스템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정이 받쳐주질 못했다. 결국 일부 나라는 `국가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리게 됐다.

이에 비해 스웨덴을 비롯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글로벌 위기에서 한걸음 비켜서 있다. 1990년대 초반 북유럽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늘어나는 복지 지출을 이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교훈을 먼저 깨달은 덕분이다. 이들은 일찌감치 복지 등 지출 예산을 차근차근 줄여갔다.

북유럽 복지 개혁은 `현재진행형`이다. 핵심은 고령화에 대비한 연금시스템 개혁에 있다.

필요한 만큼 지급하는 원칙에서 스스로 부담한 만큼 연금을 받는 구조로 과감히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정책 변화가 있다.

2007년 스웨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부유세가 폐지됐다. 감세를 선택한 대신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전략이 채택됐다. 고용을 안정시키고 종업원 복지를 확대하는 기업에는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핀란드는 1995년부터 근로자 부담률을 높이는 전략을 썼다. 국민 부담을 늘리고 복지 혜택을 줄이는 대신 재정건전성을 택했다. 덕분에 핀란드 국가채무는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뿐 아니다. 영국은 지난해 10월 소득상위 15%에 대해 아동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복지급여 상한제를 도입하고 공공 부문 일자리를 축소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영국도 `U턴`을 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도 과거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씨앗을 뿌려놓은 `복지병`을 고치기 위해 정년퇴직 연령을 2018년까지 60세에서 62세로 연장했다. 연금 100% 수령 연령도 67세로 2년 늦췄다. 정년 논쟁은 무려 15년을 지지부진하게 끌어오다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에 겨우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젊은이들이 파리 시내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는 등 세대 간 갈등까지 불거졌다. 끓는 냄비 뚜껑을 억지로 덮어둔 결과다.

그리스나 스페인도 복지 축소에 부산하다. 이들 남유럽 국가가 뒤늦게 선택한 것은 결국 세금을 다시 늘리고 복지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스는 부가가치세율을 높이고 사치세까지 도입했다. 스페인은 공무원 임금까지 대폭 삭감해야 했다.

이들 유럽 국가가 걸어온 길은 우리나라 복지논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반드시 고령화 등 사회변화, 국가 재정 장기 추세를 감안해 지속 가능한 복지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이다.

국가채무 비율이 200%를 돌파한 이웃나라 일본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본은 총예산 중 34%를 복지에 쓴다. 선진국 치고는 낮은 복지 수준이다. 국채 이자ㆍ상환에 그만큼을 또 쓰기 때문에 지출을 늘릴 여력이 없다. 조세부담률은 우리나라보다도 낮다. 일본 사례는 미리 트릴레마 해소책을 찾지 않았던 정치적 무능이 가져온 파국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복지 지출 수준이 GDP 대비 8.9%로 낮은 편이고 국가채무도 GDP 대비 34% 수준으로 양호하다. 다만 `아직까지`라는 단서가 붙는다.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박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50년 우리나라 복지 지출 비중은 GDP 대비 22.3%, 국가채무는 116%로 늘어날 전망이다. 복지 지출 항목과 조세부담률을 현재 수준에서 고정한다는 전제다. 만약 지출 항목을 신설하면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만약 우리나라가 현재 복지제도 아래에서 국가채무 비중을 60% 이내로 유지하려면 조세부담률은 현재 19.7%에서 2050년 38.5%로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 지출 항목을 추가하지 않아도 국민 부담이 두 배나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안 교수는 "단순히 성장과 복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제는 고용률로 재정운용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자리를 늘려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만들지 않으면 `복지 트릴레마`를 해소할 방책이 없다는 의미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복지 지출에 대한 적정 수준과 관련된 논쟁은 선진국 역사발전 과정에서 보면 한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면서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선진 각국에서 국가 재정적자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복지 지출 억제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잘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헌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