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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1909년/댄스1/캠버스 유화/259.7X 390cm> | <앙리 마티스, 1910년/댄스2/캠버스 유화/260X 391cm> |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Henri Emile BenoIt Matisse) 서양화가
(1869년 12월 31일 ~ 1954년 11월 3일)
앙리 에밀브누아 마티스는 프랑스 북부 르 샤토 캉브레시에서 출생, 니스 교외의 시미에에서 사망. 처음 법률을 수학하여 재판행정담당 서기가 된다. 1889~1890년 처음으로 데생, 회화에 흥미를 가진다. 1892년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가 1895년 에콜 드 보자르의 귀스타브 모로의 교실에서 루오와 서로 알게 된다.
1896년 살롱에 첫 출품. 1898년에 스승 모로가 사망하자 다음 해에 아카데미를 떠나 파리의 아카데미 카리에르에 다니며, 드렝과 알게되고, 그의 소개로 블라맹크와도 교제. 그 전후로 신인상주의에 접근, 1904년 볼라르의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염. 1905년의 여름을 드렝과 프랑스 남부 지중해 부근에서 보내고 함께 포비즘에 도달하게 된다(『콜리우르의 열린 창문』 1905, 뉴욕, 존 헤이 휘트니 소장 등).
다음 해 거트루드 스타인 집에서 피카소와 만난다. 그해에 알제리, 다음 해엔 이탈리아를 여행함. 1908년 『Note d’un Peintre』 (화가의 노트) 를 발표. 그해, 모스크바의 대수집가 시추킨에게 『후식: 붉은 색의 하모니』(에르미타주 미술관)등을 매도. 1911년에는 그의 초대로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1909년 파리 근교 이시 레 물리노에 옮기다. 1911~1912년에 모로코를 두번 여행함. 그 때부터 여러가지 공간표현의 실험, 장식적 요소의 대담한 사용을 시도한다.
1916년부터 겨울은 니스에서, 여름은 파리에서 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오달리스크』의 주제를 즐겨 택한다.
마티 부인 | 마티 부인 우표 |
1941년 대수술을 받고, 1943~1948년 남프랑스의 니스에 정주, 절지화(切紙畵)에 전념하여, 작품집 『재즈』를 출판(1947). 1948~1951년, 건축의 설계, 벽화, 스테인드 글라스 등 모두 자신의 구상에 의한 로제르 드 방스 성당을 완성했다. 일찍이 조각과 판화에도 손댄 외에 말라르메 시집의 삽화(1931) 및 그래픽 작품도 많다. 가장 순수한 의미의 색채화가로 뛰어난 데생 능력의 소유자. 니스에 마티스 미술관이 있다.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1932년 미국 메리온 소재 '반즈재단'의 벽화 『댄스II』를 완성함(반즈 재단미술관). 이후 평면화와 단순화의 시도(『장미빛의 나부』 1935, 볼티모어 미술관 등)를 거쳐, 1940년대의 대실내의 연작을 하기에 이른다(『빨간 대실내』 1948, 파리 국립현대미술관람 등).
<앙리 마티스, 1909년/댄스1/캠버스 유화/259.7X 390cm>
<앙리 마티스, 1910년/댄스2/캠버스 유화/260X 3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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