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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 정보

커피 2/에티오피아(Ethiopia) 예가체프(Yirgacheffe)

커피의 어원

커피는 영어로 ‘coffee’, 식물학적으로는 ‘coffea’로 불린다. 커피나무에서 생산된 생두(生豆)를 일정 시간 동안 볶은 뒤 곱게 분쇄하고 물을 이용하여 그 성분을 추출해 낸 음료이다. 에티오피아의 ‘caffa(힘)’에 어원을 두고 있는 커피는 커피나무가 야생하고 있는 지역인 아랍어에서 유래되었다. ‘caffa’는 희랍어인 ‘keweh’, 아라비아에서는 ‘gahwa’, 터키의 ‘kahve', 유럽에서는 ‘café’로 불렸으며 영국에서는 ’아라비아 와인‘으로 불리다 1650년경 커피 애호가였던 헨리 블런트경이 커피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각국의 커피 명칭>

coffee

café

kaffee

Caffè

koffie

kaffe

kaffi

kafa

kahvi

kahve

미국,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세르비아

핀란드

터키

 

1) 칼디의 설

최초의 커피 발명자는 6~7세기경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지방에 살았던 목동 ‘칼디(Kaldi)’로 추정된다. 목동 칼디는 염소들의 습관이며 즐겨 먹는 목초 등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살피므로 칼디의 염소들은 건강하고 성장 속도도 빨랐다. 어느 날, 칼디는 이상하게 생긴 붉은 열매를 먹고 있는 염소들을 목격하였다. 칼디는 그 열매가 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염소들이 실컷 먹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붉은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술에 취해 흥분하여 춤을 추는 듯 했다. 그 열매의 맛과 성분이 궁금해진 자신도 열매를 먹어보았고, 열매를 먹고 난 뒤 피로감이 사라지면서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황홀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곧장 인근의 이슬람 사원에 있는 사제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 사제들에 의해 이후 여러 사원으로 퍼지게 되었다.

칼디와 양들의 춤 커피 열매

 

커피의 유래

2) 오마르의 발견설

처음 커피 열매는 잠을 쫓아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주는 약에 가까웠다.

1258년 아라비아의 사제였던 ‘셰이크 오마르(Sheik Omar)’는 어느 날 잘못을 저질러 산으로 추방되었는데 며칠 길을 헤매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새가 쪼아 먹고 있던 빨간 열매를 먹게 된다.

열매를 먹은 오마르는 활력을 되찾았고 이 열매가 가진 효능을 알게 되었다. 이후 이 열매를 많은 사람들의 치료에 사용하였고 성자로서 높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3) 에티오피아 기원설

다른 지역에서 커피를 액체 형태로 추출하여 약으로 사용하였던 것과 달리 에티오피아 지역에서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다른 곡류와 함께 분쇄하여 식량으로 취급하였다. 이렇게 취급된 커피 콩은 점차 아라비아의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갔고, 11세기 초 아라비아의 ‘라제스(A. B. Lazes)와 아비세나(Avicenna,이븐 시나)를 대표로 한 의사들이 커피가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하며 각성효과가 있다’라고 발표하면서부터 약이 아닌 기호 음료로 변신을 꾀하게 되었다.

커피의 전파

커피의 전파 경로
에티오피아 → 예멘 → 터키 → 유럽 → 인도 → 이태리 → 네덜란드 → 실론→ 인도네시아 → 영국 → 프랑스 → 마르티니크 → 기아나 → 콜롬비아 → 브라질


 커피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나 문헌이 남아있지 않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6세기쯤 아비시니아(Abyssinia, 지금의 에티오피아)가 아라비아의 남부 지방(지금의 예멘) 지역을 공격하면서 커피 또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인해 터키에서 많은 수도승들이 즐기는 음료로 활용되었다. 이는 커피가 가진 각성효과로 인해 밤새 기도를 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던 수도승들에게 몹시 유용한 음료였기 때문으로 풀이 된다. 그들은 커피를 마심으로써 삶의 활력을 찾고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십자군 원정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커피는 유럽인들의 삶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 이슬람 이교도의 음료라는 이유로 종교 교리에 따라 억압되던 커피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예술의 대상으로 여겨질 만큼 관대해지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그 인기가 확산되기에 이른다. 결정적으로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에 세례를 내림으로써 이후 유럽 곳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게 되었다.

14세기경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지금의 터키)은 커피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도록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 1세(Selim I)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지금의 이스탄불)에 커피를 소개하고, 전문 커피 하우스를 만들어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기호 음료로서 즐기게 되었다. 당시 터키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하루의 커피 할당량을 준비하지 못하면 여성들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커피 사랑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으로의 전파

한국에서의 커피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황제가 처음 마셨다고 전해진다. 일반인들은 1902년 러시아 공사 웨베르(Karl. Waeber)의 처남의 처형인 손탁(Sontag)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1884년부터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알렌(Allen)의 저서에는 ‘궁중에서 어의로서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교사 아펜젤러(Heny G. Appenzeller)의 선교단 보고서에는 1888년 인천에 위치한 대불 호텔을 통해 커피가 일반인들에게 판매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1884년 미국의 천문학자 로웰(Lowell)은 그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Morning Calm)]에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1895년 간행)]에서도 커피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되었다고 했다.이는 고종이 커피를 마시기 수년 전부터 대중들도 이미 커피를 접하고 마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한국 최초의 커피로 1923년 명동의 후타미(二見) 다방을 꼽지만, 실제 구한(舊韓)말의 역사 자료에는 1913년 남대문역에서 문을 연 ‘남대문역 다방’을 발견할 수 있다. 1915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조선 철도여행 안내’ 책자에는 '남대문역 기사텐(다방·喫茶店) 내부' 라는 글과 함께 이곳의 사진이 실려 있다. 또한 철도 박물관 문서 자료에는 ‘마츠이 카이치로(松井嘉一郞)라는 일본인 청년이 경성의 잡화점이었던 무라타(村田)를 인수, 조선 총독부 철도국 남대문역 기사텐 및 식당차용 물품을 납입하였다’라는 기록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커피의 유래와 기원 (푸드스토리, 김한송)

 

 

G2는  습식가공으로 청록색   (더 상품으로 취급됨)      >      G4는  건식가공으로 노란색

 

예가체프는  Crade 2(결점두 생두 300g 당  4개~12개) 이상이면 상품으로 본다.  내가 로스팅한 제품은 이르가체페로 부드러운 신맛, 과일향, 꽃향이 있는 것을 로스팅해 보았는데 역시 여성 취향의 부드러운 산미와 먹 넘김 후 입가에 머무는 맛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