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내리는 날, 차장 밖을 한 참을 바라다 보았다. 저 눈처럼 희어지고 싶다. 아마도 죽음은 검은 색이 아닌 하얀 색일 것 같다. 한국인은 백의 민족이라고 한다. 염료가 없어서 하얀 색을 입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한국인의 하얀 정서가 좋다.
어릴 적 일찍 과부가 되어 우리집에 와 있던 작은 엄마의 하얀 소복과 머리에 꽂았던 하얀 리본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은 가족들 마저도 너무 빠르게 잊혀지고 사라지는 정서를 보면서 적어도 상청을 마련하여 애도의 기간을 갖고 슬픔에 있는 사람에게 표시를 하여 삼가할 행동들을 배려했던 우리네 정서가 그립다.
하얀 눈을 바라다 보면서 나는 쓴 커피 한잔을 어루만지고 있다. 눈 내리는 날의 정서가 사람을 그립게 한다. 늘 나는 사람이 그립기도 하지만 특히 어제 같은 날은 따뜻한 사람의 음성이 그리운 날이다. 아마도 처녀 시절이라면 여러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요란한 술집에서 시끌벅적함을 택하였을 텐데 이제는 중년 슬프다, 외롭다, 그립다라는 말을 하기도 서걱거리는 나이가 된 것이다.
사실 "그립다, 나와라!"라고 말해서 바로 만사를 젖혀 놓고 나올 이가 또 몇명이나 될 것인가?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나이가 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는 시간도 삼가하거나 배려를 해야 한다. 이제 한명과 만남이 아닌 그 가족과의 만남이 된 까닭이다.
눈 내리는 날, 하루 강아지 마냥 철 없이 뛰어 다니고 싶다. 흰 눈을 처음 보는 것 처럼 신비롭게 바라다 보고 싶다. 마치 아프리카 소녀처럼..... 흰 눈이 내리는 날 나는 유자차를 타서 마시기 보다는 코로 향기를 맡으면서 책을 본다.
TV를 볼 수도 있지만 요즘 나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소녀때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한결 마음도 편하고 잊어 버리고 있었던 노래들이 흘러 나오면 그때 그 음악을 같이 들었던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의 음성과 얼굴들이 떠오른다. 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오래된 노래처럼 나의 오랜 벗들이 노래 속에 요정처럼 살아 움직인다. "친구들아, 내가 기억하는 이 순간 행복하렴!"하고 짧은 화살기도를 올린다. 라디오 FM은 요즘 내 진정한 친구가 되어 있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난 지금 공부를 해야해! 아 현실이 보인다. 지금나는 열공을 해야 한다. 집중하자!, 집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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