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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탕밥memo

잡스 일대기

◆ IT전설 잡스 잠들다 / 스티브잡스 일대기 ◆

죽음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당대 최고의 천재 스티브 잡스. 향년 5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치열했던 삶과 일에 대한 열정은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잡스는 사랑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안주하지 말라(Don`t settle)`고 했다. 희귀암으로 투쟁했던 말년에 그의 업적은 더욱 빛났다. 전 세계 1억2800만대가 팔린 아이폰을 2007년부터 현재의 5세대 `아이폰 4S`에 이르기까지 매년 공개했으며, 태블릿PC의 대표주자 아이패드(2010년)와 아이패드Ⅱ(2011년)도 말년에 발표했다.

그가 사망한 날짜(10월 5일)와 아이폰 4S가 공개된 날짜가 잡스는 1955년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곧바로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잡스의 전기 `아이콘`은 "생모를 모르는 고아라는 사실은 그를 더욱 치열하게 살게 했다"고 전한다.

잡스는 타고난 발명가나 엔지니어는 아니다. 대신 다른 사람의 능력을 활용하는 데 탁월했다. 애플을 만들 때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재능을 높이 샀다. 1976년 잡스는 21세의 나이에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컴퓨터를 창립하고, 같은 해 애플의 첫 번째 PC인 애플I, 이듬해 애플Ⅱ를 냈다.

후속 PC인 매킨토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시 코카콜라에 다니던 존 스컬리를 영입했다. 당시 잡스가 스컬리에게 던진 스카우트 제의는 "설탕물이나 팔 겁니까. 세상을 바꿀 겁니까"였다. 이어 애플은 1984년 최초로 그래픽사용자환경(GUI)을 적용하고 마우스를 도입한 매킨토시 컴퓨터를 내놓았다.

그러나 스컬리가 화근이었다. 수익을 다변화시키고 싶어했던 스컬리는 이사회를 소집해 익명 투표를 벌인 끝에 잡스를 축출했다. 1985년 30대 나이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잡스는 여기서 실망하지 않고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창업했고 이듬해인 1986년 1000만달러에 `픽사`를 인수했다. 1995년 픽사는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내놓았고 잡스는 10억달러 이상을 가진 부자(billionaire)가 됐다.

잡스가 없는 애플은 `앙꼬 없는 찐빵`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 애플이 내놓은 `매킨토시Ⅱ`와 `파워북(노트북컴퓨터)`은 실패작으로 드러나 1993년 스컬리는 사임했다.

1996년 12월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하고 1998년 아이맥(iMac)에 이어 아이북(iBook)을 내놓으면서 애플의 부활은 시작됐다. 2001년 혁신적인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이 등장했고 뉴욕 5번가에 있는 애플스토어가 개장했다.

2003년에는 하드웨어와 완벽한 결합을 이루는 소프트웨어 `아이튠스`가 공개됐다.

그러나 2004년 7월 잡스는 49세 나이에 췌장암 수술을 받게 된다. 잡스는 당시만 해도 췌장암을 초기에 발견하고 제거에 성공해 건강을 회복했다고 밝혔었다.

잡스는 이어 아이폰 시리즈(2007~2011년), 아이패드 시리즈(2010~2011년) 등 혁신적인 모바일 기기를 탄생시키고 모바일 생태계(아이튠스, 앱스토어)로 애플을 세계 최대 IT 기업으로, 세계 최대 시가총액을 가진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2008년 아이폰 제품 행사에 몰라보게 수척한 모습으로 등장해 건강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줬고 이듬해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암이 재발하고, 이식한 간으로 전이된 데다 면역억제제 투여가 종양의 번식 속도를 높였던 것이다.

그는 지난 8월 24일 건강상 이유로 CEO직을 사임한다고 밝히고 팀 쿡에게 CEO직을 넘겼다. 애플은 5일 잡스 사망을 공식 발표하면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애플을 뒤로했지만, 스티브의 정신은 영원히 애플의 초석이 될 것이다(Steve leaves behind a company that only he could have built, and his spirit will forever be the foundation of Apple)"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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