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임방공지사항

“그림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그리는것”

“그림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그리는것”
[조선일보 2007-02-16 03:22]
56세 시각장애인 최영경씨, 울산대 미대 졸업 오른쪽 눈만 흐릿하게 볼수있어 4년내내 장학생… 유럽 유학도 “미술 교육자의 길 가고 싶어”

“지난 4년간 미술을 전공하면서 그림이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56세의 시각장애인 여성이 대학의 미술학부를 졸업했다. 주인공은 15일 울산대를 평점 4.21(4.5점 만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최영경(시각장애 5급)씨.

그는 학위 수여식에서 우수 졸업생으로 선발돼 이 대학 정몽준 이사장으로부터 학사학위를 받았다. 최씨는 “남편과 아들·딸 아이의 헌신적 도움이 없었으면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계속 눈시울을 적셨다.

최씨는 15년 전 우연한 사고로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오른쪽 눈도 사물을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정도다. 외출할 때도 되도록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그런 그가 시력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오른쪽 눈에 의지해 그림을 그려 왔다. “처음엔 거리감이 없어 힘겨웠지만 숱한 노력과 연습으로 이젠 그림을 그리는 데 큰 지장이 없다”고 했다.

최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얘기를 들어 왔지만 고교 졸업 얼마 후 결혼하고는 꿈을 잠시 접었다. 하지만 틈틈이 그림 그리기를 잊지 않았고, 2002년에는 국전에 도전해 입선하는 기쁨도 누렸다. 최씨는 2003년 만학(晩學)의 길에 나서 울산대 미술학부에 입학했다.

오십이 넘은 나이였지만 “더 늙으면 제대로 된 그림 공부를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아들·딸 또래 급우들과 경쟁하고 함께 어울리며 대학 4년 내내 장학생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학비 대부분을 면제 받았다. 유럽 현장학습 장학생에도 선발돼 2년간 유럽에 유학하기도 했다.

최씨는 올해 홍익대 대학원 서양미술학부에 합격했다. “미술 학도를 가르치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시력을 잃은 뒤 그림은 사물의 형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꿰뚫어 본 사물에 관한 생각을 진실되게 화폭에 담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야 제가 그림에 조금 눈을 떴나 봐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