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스타벅스? 처음 듣는 이름인데….”
농부 아토모코릴(50)은 호기심에 눈을 깜빡였다. “스타벅스는 가장 유명한 커피 체인점이며, 거기선 커피 한잔을 4~5달러에 판다”고 설명하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걸 마시는 사람들이 가엾군. 여기서는 커피 한잔에 3센트(약 3원)면 되는데…”
아토모코릴을 만난 곳은 커피나무가 울창한 에티오피아 지마 지역 야부나 마을의 숲속 과수원이었다. 이곳은 커피의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도 ‘커피의 수도’로 꼽힌다. 고급 커피로도 유명한 ‘시다모’와 ‘이르가체페’의 부근이다. 에티오피아인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토모코릴도 예외는 아니었다. “커피는 우리에게 삶 그 자체다. 우리가 커피를 사랑하는 만큼 커피도 우리를 돌봐준다고 믿는다.” 옆에서는 10명이나 되는 그의 아들 딸들이 바람에 떨어진 열매를 줍고 있었다. 그는 과수원 가장자리로 가더니 “이 나무는 100살이 넘었지만 매년 열매가 열린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커피가 그의 사랑에 항상 보답한 것은 아니었다. 불과 7~8년전, 이 마을의 나무에는 잘 익은 커피 열매 대신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재앙같은 커피값 폭락 때문이었다. 1㎏에 3비르(약 300원)하던 커피값이 0.5비르(50원)으로 떨어졌다. 한주에도 몇 집씩 야반도주를 했고, 아이들은 학교는커녕 병원도 가보지 못하고 죽었다.
가격폭락 ‘재앙’에 공동체 붕괴 아픈 경험
다국적기업 맞서 유기농·직수출 조합 결성
국제 커피값은 1989년 미국이 국제커피조합(ICA)에서 탈퇴한 뒤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선, 냉전 붕괴 뒤 가난한 커피 생산국들의 수입을 보장해 이들의 사회주의화를 방지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구호단체 옥스팜은 현재 전세계 커피 수요에 견줘 공급이 8% 정도 웃도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마의 농부들이 목숨을 끊던 그 무렵,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커피산업 담당 공무원 타데세 메스켈라는 국외 커피시장 동향을 살펴보고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커피값은 몇 년째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커피를 가공해 내다파는 다국적 기업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 농부의 아들인 그는 이런 부조리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많게는 150번이나 손이 바뀌는 커피의 유통과정과,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커피시장을 장악한 다국적 대기업들이 얻는 이익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메스켈라는 99년 6월, 35개 지역 커피조합을 모아 ‘오로미아 커피농업인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최초로 외국에 커피를 직접 수출하기 시작했다. 또 ‘유기농 재배’와 ‘공정무역’의 국제 인증을 받아 브랜드 파워를 과시했다. 이 조합은 조합원 10만명, 연매출 150억원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조합원들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에티오피아 전역에서 가입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들이 추진해 온 ‘공정무역’은 생산자가 제값을 받는 것 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인간다운 노동조건, 직거래, 민주적이고 투명한 조직 운영 등을 포괄한 개념이다. 아토코모릴이 사는 야부나 마을에선 오로미아 조합 배당금으로 수도펌프를 샀다. 어린이들도 대부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뿌리 깊은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마을의 원로인 메코넨은 “여전히 커피만으로 먹고살긴 힘들다”며 “커피밭 옆에 유럽 등에서 금지된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차트나무를 심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는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부피 기준으로 석유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상품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 서구인들이 재배를 강요한 ‘식민지의 작물’이었던 커피는 현대인들의 노동 생산성을 올리는 데 쓰이는 ‘착취의 열매’이기도 하다. 이런 유래는 공정무역 운동에서 커피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한가지 이유다. 오늘날 주요국에서 커피 없는 하루란 상상하기 어렵다.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라떼 혁명’ 뒤 테이크아웃 커피 시장은 해마다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 생산 농민들은 그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메스켈라는 ‘착한 커피’ 사업의 중요한 목표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날마다 접하는 음료이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됐고 정당한 대가가 지불된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런 관심을 갖는 이가 더 양심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메스켈라 커피 조합 대표 “진보와 연대해 전세계 체인점 만들것”
유기농 인증이 경쟁력 강화
“한국도 농민 살리는 커피를”
타데세 메스켈라(사진) 오로미아 커피농업인 협동조합 대표는 에티오피아 커피의 ‘얼굴’이다. 1999년 이후 전세계 20여국을 누비며 공정무역·유기농 커피를 홍보하는 그의 열정에 반한 젊은 영화인들이 다큐멘터리 <블랙골드>를 만들기도 했다. 메스켈라는 “커피는 단순히 하나의 작물이 아니라 공정무역의 희망”이라며 “농민을 죽이는 커피가 아니라 살리는 커피, 제3세계와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커피를 사달라”고 호소했다.
-왜 커피인가?
=다른 게 없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에티오피아는 다른 커피 생산국과 달리 자국 생산 커피의 35%를 국내에서 소비할 정도로 커피가 사회에서 핵심적이다.
-조합 설립 배경은?
=농민들이 죽어가던 1999년에 설립됐다. 90년대 이후 신생 커피 생산국들의 생산량이 폭증하며 국제 커피값이 급락했다. 특히 커피를 생산하는 농민들은 중간 상인과 다국적 기업들에게 이익의 대부분을 빼앗겨 왔다. 다국적 기업들은 커피의 로스팅(커피 콩을 볶는) 과정 등에서도 우리를 철저히 소외시켰다.
-조합은 어떤 일에 주력해 왔나?
=에티오피아 커피는 모두 유기농 커피다. 기계 수확을 위해 숙성제를 치는 일부 나라와 달리 비료나 농약을 쓸 여유조차 없다. 이런 점 때문에 높은 부가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1년 독일에서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최근에는 커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공정무역의 정의는?
=생산자가 적어도 생산원가 이상의 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알리기 위해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영국 등 유럽 전역과 일본, 미국 등을 돌아다녔다.
-그동안의 성과는?
=우리의 커피는 공정무역, 유기농 프리미엄으로 다른 커피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린다. 전세계에서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커피 가운데 20%만 공정무역 가격에 팔리고 있다. 수요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팔고 얻은 조합의 수익은 배당금 형식으로 다시 농민들에게 간다.
-커피 값이 낮아도 이익을 남기는 경쟁자가 있는데.
=커피 값은 내려갔지만, 커피의 소매가는 변동이 없거나 오르지 않았나. 생산국 가운데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은 커피가 주된 수출품이 아니어서 싸게 받아도 생존과는 상관이 없지만 우리는 다르다.
-다국적 기업들을 겨냥하는 이유는?
=이들은 당신이 마시는 커피 값의 가장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 맥스웰을 갖고 있는 크래프트와 폴저스를 갖고 있는 피엔지, 네슬레의 세 회사는 전 세계 커피의 60% 이상을 가공해 팔고 있다. 그 커피의 대부분은 농약을 치고 기계로 수확한 싸구려 커피다. 이들은 한두가지 단순한 조합으로 블렌딩한 뒤 비싼 값에 판매한다.
-앞으로 계획은?
=우리는 커피 산업이 단순히 원두를 생산해 파는 데서 ‘분위기를 파는’ 서비스 산업의 영역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전세계의 진보 세력과 연대해 세계적 규모의 커피 체인점을 만들고 싶다. 일단 2~3년 안에 로스팅부터 직접 시작하겠다는 계획으로 공장을 짓고 있다. 한국에서 가게를 열 사람은 없을까?
지마·아디스아바바/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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