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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탕밥memo

1급 시각장애인 김미연 불광중 영어교사

좌우 눈동자의 방향이 제각각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사시(斜視)처럼 보이죠?" 지난 18일 오후 서울 은평구 불광동 불광중학교에서 만난 김미연 교사(34)는 독서확대기에 스캔한 학생들의 영어 단어 시험지를 뚫어지게 보면서 "다른 선생님들보다 채점하는 데 시간이 2배 정도 걸리지만

김미연 교사(왼쪽 둘째)와 학생들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박상선 기자>

학생들 실력이 향상된 걸 볼 때면 힘이 절로 난다"며 빨간펜을 들었다.

김 교사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2010년부터 이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김 교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빛과 사물의 실루엣 정도다. 세상에 태어나 6개월 만에 시력을 잃었다.

남들보다 2~3배 노력한 끝에 한양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일반학교 선생님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힘을 얻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교사에 도전해 재작년 꿈을 이뤘다.

김 교사는 "장애가 없는 선생님에 비해 분명 부족한 점은 많지만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교감을 하면 학생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첫 학기 첫 수업에서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숨김 없이 고백했다.

김 교사는 "우리 사회엔 `잘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저처럼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등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설령 핸디캡이 있어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극복하고 자기 몫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제 얼굴이 정말 안 보이세요?`란다.

"`선생님은 너를 항상 지켜보고 있어`라고 답해줘요. 학생들의 반응이나 표정을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대신 아이들의 이름을 자주 불러주고 교실을 자주 돌아다니며 학생들한테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죠. 수업시간에 딴짓하다 저한테 딱 걸린 학생도 많아요.(웃음)"

시각을 뺀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그만의 `사감(四感)`을 모두 동원해 학생을 보는 셈이다. 1학년 9개반, 3학년 4개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김 교사는 100여 명의 학생 이름을 외웠을 정도다.

학생들에게도 그는 특별한 존재다. 김 교사에게 배우는 학생들은 교내에서 수업 태도가 좋기로 소문났다.

이 학교 신입생 장진영 군(13)은 "김 선생님 수업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선생님을 뵐 때마다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수영 양(13)도 "선생님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조그만한 일에도 불평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저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으면 좋겠다"며 "영어라는 지식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련이 닥칠 수 있지만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마음에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그의 두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임영신 기자]